1945년 7월 26일, 주요 3대 연합국(미국·영국·중국)의 명의로 포츠담 선언이 발표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과 소련간의 중립조약이 유효했기 때문에, 소련을 통한 강화 협상(조건부 항복)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29일 오후 4시, 스즈키 간타로 수상은 이를 묵살한다는 '문제 발언'을 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번역의 문제였다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포츠담 선언에는 별 가치가 없다, 전쟁 완수에 매진하겠다"는 문맥을 볼때 이것이 오역 문제가 아님은 분명해진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이것이 원폭이라는 미국 측 발표에 의심을 갖던 일본 정부가 원폭임을 확인한 것은 8일이었다. 9일 오전 6시, 사코미즈 히사츠네 내각 서기관장에게 소련의 중립조약 파기 다시 말해,..
일본 최후의 전시내각인 스즈키 간타로 내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던 8월 14일,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는 내각을 맡으라는 소식을 전해 받는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는 황족 출신으로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아들이며 히로히토에게는 고모부가 된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는 육군대장으로 1941년부터 방위총사령관과 군사참의관을 지냈다. 이처럼 일제의 남자 '황족'은 군인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1910년 황족신위령(皇族身位令)에 따라 육해군의 무관(장교)로 임관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가시쿠니는 전시에도 내각총리대신 하마평에 오른 적이 있었다. 1941년 10월, 제3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사퇴하자 후임 총리 하마평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히로히토의 의지에 따라, ..
1945년 8월 30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겸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 맥아더가 아츠기 비행장에 상륙했다. 이 날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가 요코하마에 설치됐다. 이어 3일 후인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에서 연합국과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 열렸다. 10월 2일에는 도쿄 다이이치 생명관에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본부가 설치됐는데, SCAP은 다이이치(제일) 생명 빌딩 외에도 여러 건물을 징발해 사용했다. 8월 13일, 포츠담 선언 수락 과정에서 일본국 덴노(天皇)와 정부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예속된다(subject to)는 연합국의 회신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였다. 따라서 SCAP은 기존의 일본 정부와 관료 조직을 이용한 간접 통치 방식을 택하였음에도 양자의 관계는 상호 대등하지 않았다. SCAP은 1952년 ..
메이지 시기 도입된 시제정촌제(1888)에서 시정촌에는 주민 직선의 의회 제도가 도입됐다. 물론 지금과 같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평등선거는 아니었다. 시에서는 3등급 선거 제도, 정촌에서는 2등급 선거제도가 시행됐다. 직접 시세 납세총액을 3등분해서 각각 의원을 1/3씩 선출했다. 즉, 납세액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표의 가치가 달랐던 것이다. 정촌장은 정촌의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했다. 이렇게 선출된 정촌장은 의장을 겸했다. 그런데, 시장의 선출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시의회에서 후보자 3명을 추천하면 내무대신이 그 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888년 원로원에서는 3대 도시(도쿄시, 오사카시, 교토시)에 대해서는 시제 적용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쿄의 15개 구에서는 호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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