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2016. 저명한 국제관계 학자인 조지프 나이 교수는 국력에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군사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문화와 이데올로기 같은 연성권력도 국력의 중대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은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상식 같은 것이 되었다. 물론 조지프 나이는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자로서 국제관계의 주류 학파인 현실주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또, 학계에서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소프트파워가 국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하드파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 비판이다. 즉, 하드파워 없이 소프트파워는 존재할 수없다는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
1970년 8월 23일, 루산에서 중국 공산당 제9기 중앙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9기 2중전회)가 열렸다. 린뱌오와 천보다는 폐지하기로 되어 있던 국가주석직을 유지해야 하며, 마오쩌둥이 국가주석에 재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오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부터 류사오치에게 국가주석직을 물려준 1959년 4월까지 국가주석이었다. 마오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이 된 류사오치는 말년에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예기치 않은 순교자가 됐고, 이후 국가주석직은 공석 상태였다. 그런데 린뱌오와 천보다의 국가주석직을 부활시키자는 주장은 마오의 방침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마오는 그 해 초, 국가주석직을 폐지할 것을 주장한 바 있었다. 또 린과 천은, 마오를 천재로 찬양하는 문구를 헌법에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더..
1982년 11월, 20년 가까이 소련을 통치하던 브레즈네프가 사망했다. 그 뒤를 이은건 유리 안드로포프였다. 안드로포프는 1984년 2월 사망했다. 1년 3개월 남짓의 짤막한 재임 기간이었다. 안드로포프가 죽자 바통을 이어받은 건 콘스탄틴 체르넨코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1985년 3월 사망했다. 역시 1년 1개월 남짓의 짤막한 재임 기간이었다. 체르넨코의 후임은 그 유명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이처럼 브레즈네프의 사망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까지 소련은 거의 매년 최고 지도자의 장례를 치뤄야 했다. 그야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다스렸던 것이다. 이 고르바초프의 회고록 『선택』에는 한 가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소련 정치인 중에 안드레이 키릴렌코 라는 사람이 있었다. 농구선수와는 동명이인.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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