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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30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겸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 맥아더가 아츠기 비행장에 상륙했다. 이 날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가 요코하마에 설치됐다. 이어 3일 후인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에서 연합국과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 열렸다. 10월 2일에는 도쿄 다이이치 생명관에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본부가 설치됐는데, SCAP은 다이이치(제일) 생명 빌딩 외에도 여러 건물을 징발해 사용했다.


8월 13일, 포츠담 선언 수락 과정에서 일본국 덴노(天皇)와 정부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예속된다(subject to)[각주:1]는 연합국의 회신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였다. 따라서 SCAP은 기존의 일본 정부와 관료 조직을 이용한 간접 통치 방식을 택하였음에도 양자의 관계는 상호 대등하지 않았다. SCAP은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기까지 6년여에 걸쳐 일본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군림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무성이 1945년 9월 27일 도쿄의 미국 대사관에서 있었던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첫 번째 회견 당시 촬영된 사진이 실린 신문을 불경하다며 판매 금지 처분하자 SCAP측에서 이를 취소한 적도 있었다.


한편, 1945년 10월 3일, 종전 처리를 위해 발족한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황족' 내각의 내무대신 야마자키 이와오가 치안유지법을 지속 적용할 뜻을 밝히자 다음 날 GHQ에서는 인권 지령을 내려 치안유지법 등 자유를 억압하는 법령의 폐지, 내무대신과 특별고등경찰 전원의 파면  10월 10일까지 정치범을 석방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10월 5일[각주:2] 히가시쿠니 내각은 총사직을 통해 붕괴됐다.


일본에서는 흔히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인 GHQ라고 부르는데 정식 영문 약칭은 SCAP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라는 두 개의 사령부가 존재했으며 이 두 사령부는 별개의 조직을 가졌다. 다만 일부는 두 사령부에서 겸직하는 사례도 있었다. 예를 들어 두 사령부 모두 사령관은 맥아더였으며, 참모장도 동일했다. 막료부에서는 SCAP 경제과학국장을 겸한 태평양육군 방공부장 마카트 소장과 같이 두 개의 사령부에서 부서장직을 겸하는 사례도 있었다.


SCAP의 조직은 시기마다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예를 들어 1945년 12월 8일에는 도쿄 재판 준비를 위해 국제검사국(IPS)이 설치됐다. 다만, 사령관을 정점으로 참모장을 보좌하는 일반참모부(G1~G4)와 부참모장 예하의 특별참모부인 막료부(민정국·경제사회국·민간정보교육국 등)와 특정 문제를 다루는 임시위원회 조직 등이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SCAP의 통치는 기존의 일본 정부와 관료 조직을 활용한 간접 통치였다. SCAP의 공식 명령은 각서(SCAPIN, SCAP Index) 등의 형태를 취했지만 구두로 전달되는 경우도 많았다. 점령 후기 즈음에는 일본 측의 의사가 대부분 반영되었다.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영·중·소를 포함한 11개국으로 구성된 극동위원회의 설치가 결정됐다. 당초 소련은 극동위원회를 도쿄에 설치할 것을 주장했으나 워싱턴에 설치됐고, 대신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자문기관으로 미·영·중·소 4개국으로 구성된 대일이사회가 도쿄에 설치됐다. 대일이사회는 1946년 4월 5일부터 1952년 4월까지 164회가 열렸는데 1분 만에 폐회된 적도 자주 있었다. 


기본적으로 주요 연합4개국에 의한 분할점령이 이루어진 독일과 달리 일본은 사실상 미국에 의한 단독점령이 이루어졌다. 패전 직후 미국은 일본 분할 점령 방안을 검토해보기도 했으나 정식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 점에서 독일과 일본에 대한 점령 정책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점령 비용(종전 처리비)은 일본 정부의 몫이었는데 한 때 일본 전체 일반 예산의 3분의 1에 달했다.


[참고 자료]

1. 小森陽一, 송태욱 역,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울: 뿌리와이파리, 2004.

2. John W. Dower, 최은석 역, 『패배를 껴안고』, 서울: 민음사, 2009.

3. 竹前栄治, 송병권 역,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서울: 평사리, 2011.

  1. 이 'subject to'의 번역에 대해서 외무성은 '제한된다'로 번역했고, 군부측은 '예속된다'로 번역하여 이렇게 되면 국체 유지(천황제 유지)는 불가능하다며 결사 항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2. 후임 시데하라 내각이 10월 10일 성립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10월 9일 해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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