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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Dikötter, The Tragedy of Liberation, The People's Trilogy, vol.2, London: Bloomsbury Press, 2016.) 고기탁 역,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인민 3부작, 제1권, 파주: 열린책들, 2016.; (Frank Dikötter, Mao's Great Famine, The People's Trilogy, vol.1, London: Bloomsbury Press, 2016.) 최파일 역,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 인민 3부작, 제2권, 파주: 열린책들, 2016.


『해방의 비극』은 프랭크 디쾨터(Frank Dikötter)의 인민 3부작(THE PEOPLE'S TRILOGY)중 제1부에 해당한다. 원서 출간 순서로 따지면 2013년 발간된 『해방의 비극』은 『마오의 대기근』보다 3년 늦게 출간된 2부에 해당한다. 그러나 『해방의 비극』은 1945년부터 1957년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용상으로는 1부에 해당한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해방의 비극』을 제1부로, 1958년부터 1962년까지를 다룬 『마오의 대기근』을 제2부로 본다. 제3부는 1962년부터 1976년까지를 다룬 『문화대혁명』으로 지난해 6월 번역됐다. 덧붙여 1부와 3부의 역자가 같고, 2부의 역자가 다르다.


프랭크 디쾨터는 이 책을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마오쩌둥, 더 나아가 중국공산당을 역사의 심파대 앞에 세웠다.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것을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다. 역사 문제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당대사의 해석은 공산당의 영도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마오에 대한 공식 평가는 어떠한가? 바로 "중국혁명에 대한 공적이 잘못을 훨씬 능가(中國革命的功績遠遠大於他的過失)"[각주:1]하며 "공적이 1차적이고 오류는 2차적(功績是第一位的 錯誤是第二位的)"[각주:2]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평가는 공정하지 않다. 객관적 평가라기 보다는 정치적 평가에 가깝다. 마오에 대한 공칠과삼식의 평가는 덩샤오핑이 주도했다. 덩샤오핑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하듯 할 수 없었다. 마오는 중국의 스탈린이자 레닌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마오를 평가하면 중국공산당의 권위에도 큰 타격이 입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마오를 반인반신 그대로 남겨두기도 곤란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반인반신 마오 주석이 직접 점지하신 후계자 영명한 영수 화궈펑'의 영도를 계속 받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문화대혁명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칠과삼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내려진 판결인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관찰자는 이런 면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비록 자료 수집의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마오쩌둥은 "전략적으로는 적을 멸시하되 전술적으로는 적을 중시"[각주:3]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적의 내부] 모순을 이용하여 다수를 쟁취하고, 소수를 반대하며,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써야 한다."[각주:4]고 주장했다. 실제로 마오쩌둥 통치기 중국은 공산당,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오쩌둥 자신의 '적'을 각개격파한 역사로 요약할 수 있다. 프랭크 디쾨터는 이렇게 지적한다.


중국에서 공산주의의 역사는 약속과 약속의 파기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자들은 권력을 잡기 전까지 구애 작전을 펼쳤다. [……] 농민에게는 땅을, 소수 민족에게는 독립을, 지식인에게는 자유를, 사업가에게는 사유 재산의 보호를 ,노동자에게는 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약속했다. [……]



이러한 약속들은 하나씩 파기되었다.[각주:5]


공산당 통치를 피해 대만으로 피신한 후스(胡适)는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침묵할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과 충성심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각주:6]


 확실히 후스의 지적은 옳았다.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한다.


중국은 하나의 극장이었다. 심지어 무대 밖에서도 사람들은 강제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농부들은 곡식을 더 많이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 상점 주인들은 재산을 국가에 넘기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환한 얼굴로 자발적으로 협조해야 했다. [각주:7]


저자에 따르면 공산당이 통치하던 1957년 공장 노동자들의 삶은 20년 전인 1937년보다 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국공내전이 치열했던 1948년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저자는 공산당이 자신들의 집권기와 이전 국민당 정권 시절을 비교하는 연구 결과를 만들었지만 결국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편, 대약진 시기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세한 사망자 수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통상적인 사망자 수를 제외한 초과 사망자 수, 쉽게 말해 마오와 중국공산당이 대약진 운동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인구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연구자의 견해에 따라 다르다. 사실 당시 '초과사망자'가 얼마나 되느냐를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천이쯔(첸이즈)의 주장을 수용, 4300만명에서 4600만명 가량이 대약진 운동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천이쯔는 1989년 천안문 사태(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 당시 총서기의 측근으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특히, 저자는 대약진 운동에 대한 마오의 책임을 강력히 규탄한다. 이 점에서 모리스 마이스(Maurice Meisner)와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모리스 마이스너가 정책상의 실패와 의도적인 대학살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디쾨터는 대약진 운동의 근간에는 강압과 공포가 있었고 대학살과 비교해도 도덕적으로 더 낫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약진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던 마오쩌둥에게 그런 모험이 초래한 인간적 재난에 대해서 가장 큰 도덕적·역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 의도하지 않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정치적 행위의 결과와,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대량학살 사이에는 엄청난 도덕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각주:8]


<기근>이라는 안이한 용어 사용은 이러한 죽음들이 형편없이 실행된 섣부른 경제 계획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널리 퍼진 시각을 뒷받침 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 그러나 이 책에 제시된 새로운 증거들이 입증하듯이 강압과 공포, 체계적인 폭력이 대약진 운동의 토대였다.[각주:9]



이렇게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이스너가 일반적으로 마오와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좋은 책이지만, 번역과 관련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서기국[각주:10](『마오의 대기근』, p.59.), 국무원장[각주:11](『마오의 대기근』, p.152, 160, 257, 480, 489)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1. (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文獻研究室, 『關于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北京: 人民出版社, 1985.) 허원 역, 『정통 중국 현대사: 중국공산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서울: 사계절, 1990, p.47.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文獻研究室, 『關于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北京: 人民出版社, 1985.) 허원 역, 『정통 중국 현대사: 중국공산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서울: 사계절, 1990, p.51. [본문으로]
  4. (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文獻研究室, 『關于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北京: 人民出版社, 1985.) 허원 역, 『정통 중국 현대사: 중국공산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서울: 사계절, 1990. p.51. [본문으로]
  5. (Frank Dikötter, The Tragedy of Liberation, London: Bloomsbury Press, 2010.) 최파일 역,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파주: 열린책들, 2016, pp.11-12. [본문으로]
  6. (Frank Dikötter, The Tragedy of Liberation, London: Bloomsbury Press, 2010.) 최파일 역,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파주: 열린책들, 2016, p.290. [본문으로]
  7. (Frank Dikötter, The Tragedy of Liberation, London: Bloomsbury Press, 2010.) 최파일 역,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파주: 열린책들, 2016, p.401. [본문으로]
  8. (Maurice Meisner, Mao's China and After: A History of the People's Republic, 3rd ed., New York: Free Press, 1999.) 김수영 역,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서울: 이산, 2004, p.331. [본문으로]
  9. (Frank Dikötter, Mao's Great Famine, London: Bloomsbury Press, 2010.) 최파일 역,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 파주: 열린책들, 2016. p.13. [본문으로]
  10. '서기처'의 오역 [본문으로]
  11. '국가주석'의 오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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