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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독서국

마오쩌둥 평전②

소노라 2018.02.23 21:21

한편,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 대한 저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치고 빠지기 식'의 마오쩌둥의 유격 전술이 옳았고, 둘째로 국민당 군대는 부패하고 분열된 상태인데다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다. 여기에 더해 소련의 태도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련이 공산당의 중국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보지만 이것은 잘못이며, 스탈린은 "중국 내 무력 충돌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국민당을 구원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각주:1]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원인은 [……]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오쩌둥 군대가 전쟁 초기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통적인 유격대 방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국민당 군대는 내적으로 분열된 상태였으며, 장군이나 장교들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무력했다. [……] 셋째, 국민당 정부는 경제 발전을 촉진시킬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 넷째, 소련의 태도도 중요했다. 비록 스탈린이 처음에 중국의 내부 갈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기는 했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반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각주:2]


이 정도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국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이 빠진 것 같다.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이라는 시대적 상황이다. 국민당 정부의 통치권은 주로 도시에 머물렀으며, 각 지방 농촌에까지 통치권이 완벽히 침투하지 못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중일전쟁 시절 일본은 중국의 주요 도시들, 다시 말해 국민당의 통치권의 주요 원천이었던 지역들을 점령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국민당의 통치권이 약화되었다. 게다가 홍군이 항일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과거의 통설 또는 중국의 공식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홍군은 이 당시 어부지리 전략을 사용했다. 국민당 군대가 일본군과 싸우며 피해를 입는 사이에 자신들의 군사력을 증강했던것이다.


일본의 침략은 국민당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국민당은 재정적·정치적 지원의 주요 원천이었던 대도시에서 쫓겨 났기 때문이다. 전쟁은 국민당에게 겉잡을 수없는 경제적 혼란과 관료의 부패 그리고 결국에는 전반적인 도덕적 타락을 가져다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농촌에서 국민당의 행정적 권위가 대부분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 반면 이미 농촌 내 활동과 게릴라전에 익숙해진 공산주의자들은 광활한 농촌지역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일본 침략자들은 도시는 점령할 수 있었지만 농촌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인력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기간에 바로 이 농촌지역에서 공산당게릴라의 근거지가 빠르게 확산되었다.[각주:3]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역사적 상황이 없었다면 공산당이 지금처럼 중국 본토를 장악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저자들이 공산당에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공내전 기간 홍군하면 예의를 지키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은 신사적 군대로 포장되어 있지만, 저자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합 홍군은 북상하여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새로운 소비에트 지구(근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쓰촨, 간쑤, 산시 접경 지역으로 이동했다. 쓰촨 서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지인들이 약탈을 일삼는 공산주의자들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이다.[각주:4]


한편,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오쩌둥하면 떠오르는 것은 많은 것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문화대혁명이다.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인데, 죽음을 3개월 앞 둔 시점에서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것이 자기 인생의 두 가지 업적 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나는 평생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장제스와 수십 년간 싸워서 그를 바다에 있는 섬으로 쫓아 버리고 8년 동안 일본과 싸워 일본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일이다. [……] 다른 하나는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일이다.[각주:5]


일반적으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이유는 그가 권력에서 소외되어 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1945년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된 『중국공산당 장정(당헌당규)』에서는 중앙위원회 주석이 중앙정치국 주석(중앙위원회 정치국 주석)과 중앙서기처 주석(중앙위원회 서기처 주석)을 겸하도록 되어 있었다.[각주:6] 이에 따라, 마오쩌둥은 당 중앙위원회 주석, 당 중앙정치국 주석, 당 중앙서기처 주석,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했다. 특히 마오쩌둥 사상이 당장에 삽입될 정도였는데, 7차 당대회에서 류사오치의 마오쩌둥 숭배 발언은 지금봐도 낯뜨거울 정도다.


여러 역사적 사건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혁명은 모택동의 지도력과 그의 혁명이론에 의해서 전개될 때 그 혁명은 모두 성공하였다. 이와는 달리 모택동의 사상과 지도력에 의하지 않은 일들은 모두 실패하였다. 우리의 모택동 동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가장 위대한 이론가이며 과학자이다. 모택동의 이론은 우리 당의 기본지침으로 당장에 명문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각주:7]


그러나 12년 후인 1956년 열린 8차 당대회에서는 마오쩌둥 사상이 장정에서 삭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위원회 주석과 중앙서기처 주석이 분리되는 등 집단지도체제로서의 면모가 강화된다. 7차 체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당 부주석(중앙위원회 부주석)제가 신설됐다. 또, 7차 체제의 중앙서기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로 개편되고, 개편된 중앙서기처의 수장인 총서기에는 덩샤오핑이 올랐다. 문화대혁명 시절 덩샤오핑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로 몰려 숙청된 바 있다. 마오쩌둥은 류사오치 국가주석과 덩샤오핑 당 총서기가 이끄는 정책에 큰 반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마오는 덩샤오핑이 자신을 죽은 조상 모시듯 겉으로는 공손히 섬기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을 업무에서 소외시켰다고 불만을 털어놓았고, 덩샤오핑이 이끄는 중앙서기처는 독립왕국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59년부터 지금까지 덩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나를 찾아 상의한 적이 없다. 덩은 귀 먹은 벙어리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를 택했다. 그는 나를 존경하지만, 나와 거리를 두고 마치 죽은 조상님 대하듯 한다."[각주:8]


모택동은 1965년 9월 개최된 공작회의에서 [……] "중앙정치국과 중앙서기처는 두 개의 '독립왕국'이다"라고 이들을 비난하였다.[각주:9]


마오쩌둥이 분노를 느끼고 문화대혁명을 발동하기에 이른 것은, 이처럼 권력에서 소외되어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마오가 문혁을 일으킨 것은 단순히 권력욕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던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노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관점과 달리 우리는 문화대혁명을 단순히 마오쩌둥의 마지막 권력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이를 새롭고 이상적인 사회에서 새롭고 이상적인 인민을 창조하는 자신의 이상주의적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진지하지만 비극적 결함을 숨길 수 없었던 그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주:10]


모리스 마이스너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문혁에 대한 마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왕조국가이든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의 탈을 쓴 독재국가이든 최고 권력자는 엄청난 권력을 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는 못할뿐더러, 일선의 국민(또는 신민)들과 직접 닿지 못하고 관료 기구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 이런 독재국가에서 고통받는 민초들은 자신들의 삶이 괴로운 것은 관료들의 욕심 때문이고 최고 지도자는 선하신 분이시며, 그 분이 알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흔하다. 한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의 건강상태에 대해 슬프다는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다. 그와 함께 일하고 그에게 잘못된 보고를 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그가 현지지도를 다니며 간소한 식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그가 인민들을 위하는 지도자임을 믿는다.[각주:11]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도 이런 믿음이 있었다.


제국 시대에 흔한 확신은 황제는 자애로우나 그 신하들은 부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화 인민 공화국에서는 그런 확신이 더욱 깊었으니 [……] 부패한 간부가 자애로운 주석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정부>라는 멀리 떨어진 존재와 <마오쩌둥>이라는 반신은 착한 편이었다. 그가 알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텐데……· [각주:12]


그렇지만 저자들은 마오는 문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노라고 냉정히 평가한다. 


마오쩌둥은 이런 사실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을까? [……] 스탈린과 달리 그는 개인적으로 사형집행 영장에 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자살하게 만들었다면 그 역시 처형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 마오쩌둥이 무법천지의 규모를 상상하지 못했다거나 어디에서 보편적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희생자들의 비참한 운명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그는 우둔하고 잔인한 대규모 공포를 야기한 장본인이다.[각주:13]


이렇듯 이 책은 전반적으로 보면 꽤 균형이 잘 잡혀진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저자들의 실수를 역자가 주석을 통해 알려주거나 부연 설명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각주:14] 이 점도 좋았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가행정위원회의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각주:15], "마오쩌둥은 건강상의 이유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서 물러"[각주:16], "정치국 상임위원회"[각주:17]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올바른 표기가 많지만 간혹가다 상임위원회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번역의 통일성이 좀 떨어지는 것 아닐까.


상당히 훌륭한 책이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번역도 좋은 편이다.


최초 작성: 2018.02.09. 07:39

발행: 2018.02.23. 21:29

  1. ibid., pp.504-505. [본문으로]
  2. ibid., pp.503-505. [본문으로]
  3. (Maurice Meisner, Mao's China and After: A History of the People's Republic, 3rd ed., New York: Free Press, 1999.) 김수영 역,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서울: 이산, 2004, 6.2. [본문으로]
  4. (Alexander V. Pantsov & Steven I. Levine, Mao: The Real Story, New York: Simon & Schuster, 2012.) 심규호 역, 『마오쩌둥 평전』, 서울: 민음사, 2017, p.407. [본문으로]
  5. ibid., p.816. [본문으로]
  6. 1945년 채택된 중국공산당 장정은 제34조에서 "중앙위원회 주석은 중앙정치국 주석과 중앙서기처 주석이 된다(中央委员会主席即为中央政治局主席与中央书记处席)"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때의 중앙서기처는 오늘날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7. 송영우, 『중국적 정치』, 서울: 지영사, 2012, p.32. [본문으로]
  8. (Benjamin Yang, DENG: A Political Biography, M.E. Sharpe, 1997.) 권기대 역, 『덩샤오핑 평전』, 서울: 황금가지, 2004., p.217. [본문으로]
  9. 송영우, 『중국적 정치』, 서울: 지영사, 2012, p.69. [본문으로]
  10. (Alexander V. Pantsov & Steven I. Levine, Mao: The Real Story, New York: Simon & Schuster, 2012.) 심규호 역, 『마오쩌둥 평전』, 서울: 민음사, 2017, pp.20-21. [본문으로]
  11. (Victor Cha, 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 Past and Future, New York: HarperCollins, 2012.) 김용순 역, 『불가사의한 국가: 북한의 과거와 미래』, 서울: 아산정책연구원, 2016., pp.612-613.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2. (Frank Dikötter, Mao's Great Famine, London: Bloomsbury Press, 2010.) 최파일 역, 『마오의 대기근』, 파주: 열린책들, 2016, p.339. [본문으로]
  13. (Alexander V. Pantsov & Steven I. Levine, Mao: The Real Story, New York: Simon & Schuster, 2012.) 심규호 역, 『마오쩌둥 평전』, 서울: 민음사, 2017, p.742. [본문으로]
  14. p.57, p.91, p.517. 등 [본문으로]
  15. ibid., p.521. [본문으로]
  16. ibid., p.612.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의 직책은 총서기였던 적도 있고, 주석이었던 적도 있다. 1945년부터 1956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처에는 주석을 두었고, 당 (중앙서기처) 총서기를 둔 것은 8차 당대회에서다. 그러니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주석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본문으로]
  17. ibid., p.713.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맞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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