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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2016.


저명한 국제관계 학자인 조지프 나이 교수는 국력에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군사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문화와 이데올로기 같은 연성권력도 국력의 중대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은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상식 같은 것이 되었다. 물론 조지프 나이는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자로서 국제관계의 주류 학파인 현실주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또, 학계에서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소프트파워가 국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하드파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 비판이다. 즉, 하드파워 없이 소프트파워는 존재할 수없다는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명의 충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그것들이 물질적 성공과 영향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파악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운 힘은 딱딱한 힘의 토대 위에서만 힘을 갖는다.[각주:1]


물론, 조지프 나이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신현실주의자(구조적 현실주의자)들은 사상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유물론자들 같다고 지적하며,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서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각주:2]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19세기 무렵 교황령의 영토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바티칸의 소프트파워가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각주:3]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된 국가들이 소프트파워도 추구하게 된다는 데는 큰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중국은 지난 30여년간 놀라운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2008년을 전후해서 베이징 올림픽의 개최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중국인들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제는 중국이 세계의 전면에 나설 때라는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중국 모델론이라는 이름으로 수출하여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 모델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유교다.


지난 수천년간 중국을 지배했던 유교는 지난 백년 동안 처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유교에 대한 박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정점에 달했다. 린뱌오는 문화대혁명 시절 한 때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된 권력 서열 2인자였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린뱌오는 문혁을 이끌었던 주요 인사중 하나였다. 따라서 문혁이 시작할 때부터, 정확히 말하면 문혁이 시작하기 전부터, 마오쩌둥의 적으로 규정되었던 류사오치를 타도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린뱌오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린뱌오가 공자의 제자였다는 것이다.[각주:4] 이른바 비림비공 운동이다. 비림비공은 지난 시절 중국에서 유교가 받은 박해를 상징한다.[각주:5]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덩샤오핑은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며, 시장과 계획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짓는 기준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자본주의에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소련 해체와 독일 통일로 대표되는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은 중국 공산당에게 큰 경계심을 심어주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생긴 이념적 공백을 강력한 민족주의와 유교 사상으로 대체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일당독재를 경제성장과 내셔널리즘-유교사상를 이용해 정당화한다.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부는 사회 통합을 위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만 호소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국가 정통성의 기초를 변화시켜야 했다. 여기서 국가에 의해 '발견된' 것이 바로 유학이다.[각주:6]


개혁 개방과 시장 경제의 도입은 이념적 공백을 가져옴으로써 유교가 복권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 개혁 개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은 중국인들에게, 이제 자신들의 문화를 긍정할만한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유학열풍 현상에는 무엇보다도 중국의 경제성장이라는, 공전의 변화된 배경이 깔려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유학열풍을 탄 1990년대 이후 중국경제의 발전에 따른 전 민족적 자신감과 문화적 자신감의 반영이며 민족정신과 윤리도덕의 재건을 향한 민중의 강렬한 요구라고 해석하는 천라이陳來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각주:7]


그렇다면 중국 모델론의 미래는 어떤가? 저자는 여기에 대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중국 내부 문제를 무시하는 중국 모델론은 '모델로서 보편성'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기존 서양 모델의 대체제가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모델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대안이 진정한 대안이기 위해서는 중국 내부의 문제 자체에 대안적일 수 있어야 한다. 내부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당연히 글로벌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 다수 인민의 행복과 인권을 방기하고서 외부의 대안이 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각주:8]



개인적으로도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논리를 제대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 실린 저자와 왕리슝의 이메일 인터뷰에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1. (Samuel P. Huntington,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New York: Simon & Schuster, 1996.) 이희재 역, 『문명의 충돌』, 파주: 김영사, 2009, p.117. [본문으로]
  2. (Joseph S. Nye,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7th ed., New Jersey: Pearson Educaton, 2009.) 양준희·이종삼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파주: 한울, 2015, p.115. [본문으로]
  3. ibid. [본문으로]
  4. (Maurice Meisner, Mao's China and After: A History of the People's Republic, 3rd ed., New York: Free Press, 1999.) 김수영 역,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제2권, 서울: 이산, 2004., pp.557-560을 참조. [본문으로]
  5. 물론, 비림비공 운동의 진짜 표적은 '이미 죽은 린뱌오'가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저우언라이'였다. (Roderick Macfarquhar, Frederick C. Teiwes, Kenneth Lieberthal, Harry Harding, Richard Baum, Joseph Fewsmith and Alice Miller, The Politics of China: Sixty Yea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3r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김재관·정해용 역, 『중국 현대정치사: 건국에서 세계화의 수용까지 1949~2009』, 서울: 푸른길, 2012, pp.398-402. 한편, 저우언라이 사후, 발표된 그의 부고문에서는 저우가 비림비공 운동의 승리를 쟁취하는 데 큰 공헌이 있었다고 한 것이 재밌다. [본문으로]
  6. 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2016, pp.70-71. [본문으로]
  7. ibid., pp.70-71. [본문으로]
  8. 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2016, p.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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