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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01.) 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파주: 나남, 2004.;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Updated ed.,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14.) 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서울: 김앤김북스, 2017.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은 대표적 국제정치학자중 한 명인 존 미어샤이머의 명저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2001년 출간된 원서 초판본이 2004년 나남출판을 통해 번역 발간됐고, 2014년에 원서 개정판이 나오자, 2017년 김앤김북스를 통해 번역됐다. 2004년 나온 번역 1판은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받았지만 품절 되어 구하기 꽤 어려운 책이었다. 2014년 미어샤이머 교수가 개정판을 내놓았는데, 사실 이 서평을 처음 쓴 2015년만 해도 개정판 번역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치도 않았었다.

참고로 2001년 초판과 2014년 개정판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마지막 10장이 "21세기 강대국 국제정치(Great Power 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수 있을까?(Can China Rise Peacefully?)"로 바뀌었고, 그 밖에는 개정판 서문이 추가된 정도다. 한국어 2017년판은 2004년판과 비교할 때 자잘하게 번역이 수정된 곳이 꽤 있는데, 내용이 달라진 건 아니고, 그냥 자구가 좀 수정된 정도다. 원서 내용에 변화가 없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하드커버에서 페이퍼백으로 바뀌고 편집이 달라지긴 했다.

국제정치학은 크게 자유주의(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진영으로 양분할 수 있다. 무역이 활발해지면 국가들은 쉽게 전쟁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나,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은 자유주의의 대표적 이론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세계 평화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세계 평화가 현실적인 일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바로 현실주의자들이다. 현실주의는 크게 한스 모겐소의 고전적 현실주의와 케네스 월츠(케네스 왈츠)가 제기한 구조적 현실주의(신현실주의)로 나뉜다. 고전적 현실주의는 국제 분쟁의 원인으로 인간 본성을 찾는다. 반면, 신현실주의는 무정부 상태라는 국제정치의 구조 때문에 국가들이 경쟁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쟁이 벌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신현실주의를 구조적 현실주의라고도 한다.

 미어샤이머는 이 구조적 현실주의에 속하는 학자다. 물론, 미어샤이머와 월츠의 이론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월츠의 이론에서 국가들은(특히, 강대국) 일정한 수준의 힘에 도달하면 더 이상의 힘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어샤이머는 국가들은 패권국이 되지 않는 이상 결코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으며 늘 더 많은 힘을 추구한다고 본다.


잠재적 라이벌에 대항하여 자신의 압도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원하는 일부 패권국을 제외한다면 국제체제에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강대국은 없다. 강대국들이 현재의 힘의 분포(distribution of power) 상황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강대국들은 모두 힘의 분포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동기에 당면하게 된다. 강대국들은 항상 현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며, 만약 그것이 합리적 대가를 치름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균형상태를 바꾸려 한다.[각주:1]


미어샤이머의 이론에서 강대국들은 보다 많은 힘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히 공격적으로, 기회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미어샤이머의 이론을 공격적 현실주의(공세적 현실주의)라고 하고, 월츠의 이론을 방어적 현실주의(수세적 현실주의)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미어샤이머는 왜 강대국들이 자신의 힘에 만족하는 경우가 없다고 단언할까?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 이순신과 원균은 같은 조건의 조선 수군을 지휘해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남겼다. 이처럼 전쟁에서는 객관적 지표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기와 지도자의 능력이 작용한다. 또, 국가들간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냉전 당시 소련이 100년도 못 가 무너질거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또,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안전한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무정부 상태라는 구조 탓에 국가들은 다른 나라가 자신을 공격해도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결국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는 것, 즉 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첫째로, 한 나라가 상대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얼마만큼 상대적으로 우세한 힘을 보유해야만 하는지를 평가하기 어렵다. 힘이 두 배쯤 된다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 배쯤은 되어야 한다고 말할까? 이 문제의 연원은 단순한 힘의 계산만으로는 어느 나라가 전쟁에 이길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능란한 전략은 때로 약한 나라가 더 강한 상대방을 격파할 수 있게 만든다.


둘째로, 강대국들이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동안 국가간 힘의 분포 상태가 어떻게 변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경우, 현재 얼마나 많은 힘이 있으면 충분하기를 결정하는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개별 국가의 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때로 그 변화는 심각하며 그래서 세력균형의 변화방향 및 변화정도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서방국가의 어느 누구도 소련의 몰락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각주:2]


미어샤이머의 이론에서, 강대국들이 안전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자신이 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 그리고 내일, 얼마만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강대국들은 자신의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금 바로 패권국이 되어서 다른 강대국의 도전의 가능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각주:3]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국제체제의 패권국이 되는 일입니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국력을 보유한 국가의 경우 그 나라의 생존은 거의 확실하게 보장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The ideal outcome is to become the hegemon in the system, because the survival of a state with so much relative power is almost guaranteed.)[각주:4]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각주:5]

강대국들은-그것이 바람직한 결과이기는 하지만-단순히 가장 강한 나라(strongest power)가 되기 위한 목적에서 경합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들의 궁극적 목표는 패권국(hegemon)-즉, 국제체제에서의 유일한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각주:6]


하지만 교통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지구적 패권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미어샤이머는 말한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대륙을 경영하는 것과, 다른 강대국이 존재하는 다른 대륙으로 병력을 전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의 대부분이 바다로 덮여 있다는 사실은 어떤 국가가 지구 전체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각주:7]

강대국의 지구적 패권을 제약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 큰 바다를 건너 군사력을 투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 강대국은 육지로 이어져 있는 이웃 지역을 정복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전 세계적 패권국이 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각주:8]


물론, 미어샤이머는 어느 한 나라가 핵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핵우위란 무엇일까? 상호확증파괴(MAD)라는 말이 있다. 냉전기 공포의 핵균형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다. 발음도 미쳤다는 뜻의 mad와 같다.(물론 그렇게 되도록 만든 두문자약어일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상대방을 먼저 선제공격을 해서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능력(제1타격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반면,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경우, 당한 만큼 되돌려줄 정도의 보복력(제2타격력)은 갖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공격을 하더라도 상대를 궤멸시킬 수 없을뿐더러, 내가 상대방을 공격한만큼 상대도 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공포의 핵균형이 작동했다.

그런데 만약, 한 나라가 선제 공격을 통해 상대방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또는 상대방의 보복 공격을 완전히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어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나라는 핵 우위에 선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재래식 군사력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나라가 상대방 전부를 압도할 수 있는 핵 우위를 확보한다면, 그 나라는 국제체제의 유일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핵 패권국이 등장할 경우 재래식 군사력의 균형이란 무의미하다.[각주:9]

상대방에 대해 핵 우위를 달성한 국가는 그 체제에서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등극할 수 있다. 핵 우위를 달성한 국가의 힘의 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각주:10]


하지만 미어샤이머는 어느 한 나라가 핵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가능한 상황은 아니"[각주:11]라고 말한다. 가능하더라도 핵 우위는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 미어샤이머는 강대국들의 목표는 자신이 속한 대륙에서의 지역 패권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역 패권국은 다른 대륙에서 자신과 같은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역외균형자로 역할한다고 주장한다. 미어샤이머는 현대사에 나타난 유일한 지역 패권국은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강대국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방법에는 유화, 편승, 책임전가, 세력균형 등의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강대국이 강대국을 견제할 때는 세력균형의 방법이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미어샤이머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역사를 볼 때, 강대국들은 다른 강대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전략 즉, 책임전가 전략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위협을 당하는 강대국들이 [……] 택할 수 있는 실질적 선택은 균형과 책임전가 중 하나일 것이며 위협을 당하는 국가들은 가능한 한 균형을 이루기보다 책임전가를 선호하는 것이다.[각주:12]

국가들은 위험한 적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함을 선호한다.[각주:13]


그런데, 국가들이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는 이러한 전략은 국제체제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하나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상황을 단극체제라 하고,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경우를 양극체제라 한다. 세 개 이상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경우를 다극체제라고 한다. 양극체제와 다극체제는 다시 강대국들 사이에 한 나라가 압도적 힘을 가져서 잠재적 패권국의 지위에 오른 국가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양극체제에서 잠재적 패권국이 존재한다면 그 체제는 불균형적 양극체제지만, 불균형적 양극체제는 곧 단극체제로 이행할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또, 단극체제는 유일 강대국인 패권국이 존재하는 상황인데 현실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국제체제를 균형적 양극체제와 균형적 다극체제, 불균형적 다극체제로 정리할 수 있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체제 내에 책임을 떠넘길 다른 강대국이 존재하는 다극체제라면 강대국들은 책임전가를 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책임을 전가할 제3의 강대국이 없는 양극체제에서는 직접 상대와 세력균형을 맞출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극체제하의 강대국의 경우 책임전가 전략은 불가능하다. 책임을 담당할 세 번째 강대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각주:14]


이렇듯,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에 따르면 이 세상은 꽤 비극적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실제로 미어샤이머도 세계 평화를 이루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각주:15]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최초 작성일: ’16.05.25. 22:47
1차  수정일: ’18.01.10.




  1.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01.) 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파주: 나남, 2004., p.33. [본문으로]
  2. ibid., pp.93-94. [본문으로]
  3. ibid., p.94. [본문으로]
  4. ibid., p.8, 12. [본문으로]
  5. ibid., p.68. [본문으로]
  6. ibid., p.33. [본문으로]
  7. ibid., p.178. [본문으로]
  8. ibid., pp.281-282. [본문으로]
  9. ibid., p.38. [본문으로]
  10. ibid., p.261. [본문으로]
  11. ibid., p.38. [본문으로]
  12. ibid., pp.279-280. [본문으로]
  13. ibid., p.282. [본문으로]
  14. ibid., p.509. [본문으로]
  15. ibid., p.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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