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라 송신소

이스라엘의 헌법

국제정치 2016.12.21 22:21 by 소노라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입헌주의를 표방한다. 입헌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통치의 근거가 될 헌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성문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영국에는 '헌법'이라는 단일한 법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영미법계 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성문 헌법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헌법이나 입헌주의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건 미국에서 헌법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사실, 이스라엘에는 성문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성문 헌법을 만드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종교계 정당들이 헌법 제정에 반대하며 성경(모세 5경)만이 이스라엘의 헌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스라엘 제헌의회에서는 헌법 대신 기본법들을 제정했고, 이 11개 기본법들이 헌법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 이, 기본법이 헌법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다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기본법에 맞지 않는 다른 법률을 무효화 시킨 적이 있다.


[참고자료]

1. 신명순, 『비교정치』, 서울: 박영사, 1999,  p.53.

2. 법제처, 세계법제정보센터(http://world.moleg.go.kr/World/MiddleEast/IL/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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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일본 2016.08.18 20:09 by 소노라

1945년 9월 20일,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의 외무대신 요시다 시게루가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방문한다.  히로히토가 맥아더를 만나는 것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시다는 맥아더로부터 히로히토의 비공식 방문은 부적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환영한다는 뜻을 확인한다. 이어 후지타 히사노리 시종장이 맥아더를 방문한다. 후지타는 맥아더에게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성실히 이행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고 싶다는 히로히토의 뜻을 전달한다. 이렇게 해서 9월 27일 오전 10시 무렵, 주일 미국 대사관에서 맥아더와 히로히토간의 첫 번째 회담이 열리게 된다.


맥아더와 히로히토는 사진을 세 번 찍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진이 불경하다는 이유로 신문 게재를 금지하지만,

GHQ가 이 조치를 철회시킨다.





1961년, 후지타는 자신의 회고록(『시종장의 회상』[각주:1])에서 히로히토가 자신의 전쟁책임을 통감했다고 적고 있다.


패전에 이른 전쟁에 대해 여러가지로 책임이 추궁되고 있지만, 그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

문무백관은 내가 임명하는 자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책임이 없다. 내 한 몸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를 당신에게 위임한다. 제발 국민이 더 이상 생활에 곤란함을 겪지 않도록 연합국의 원조를 부탁한다.[각주:2]


당시 히로히토를 수행했던 후지타 시종장 등은 다른 방에서 대기했다. 따라서 후지타는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대화 내용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후지타는 회담이 끝난 후 속기록에서 위의 대화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히로히토가 자신의 전쟁책임을 인정했다는 식의 발언은 이 대화의 당사자였던 더글라스 맥아더의 회고록에도 나온다. 이 말을 들은 맥아더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으며, 감동했다고 한다.


2002년 10월, 아사히 신문의 청구로 회담 속기록이 공개됐다. 외무성에서는 이 기록을 비공개 하기로 결정했지만, 정보공개심사회가 외무성에 정보 공개를 요청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공개된 속기록에는 히로히토가 저런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저 발언의 내용과는 정 반대로, 자신의 전쟁책임을 모면하려는 듯한 발언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번 전쟁에 대해서, 나로서는 극력 피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을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각주:3]


[참고 자료]

1. (小森陽一, 『天皇の玉音放送』, 東京: 五月書房, 2003.) 송태욱 역,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울: 뿌리와이파리, 2004, pp.121-123.

2. (Herbert P. Bix, Hirohito and the Making of Modern Japan, New York: HarperCollins, 2000.) 오현숙 역,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 서울: 삼인, 2010.

3. 김현우, 『일본 현대정치사』, 서울: 아카넷, 2004.

4. 이시카와 마쓰미, 박정진 역, 『일본 전후 정치사』, 서울: 후마니타스, 2006.


  1. 원제는 侍従長の回想 [본문으로]
  2. (小森陽一, 『天皇の玉音放送』, 東京: 五月書房, 2003.) 송태욱 역,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울: 뿌리와이파리, 2004, pp.121-123. [본문으로]
  3. (小森陽一, 『天皇の玉音放送』, 東京: 五月書房, 2003.) 송태욱 역,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울: 뿌리와이파리, 2004, pp.114-11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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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타격력과 제2타격력

국제정치 2016.08.15 19:44 by 소노라

제1타격력과 제2타격력은 핵무기와 관련된 용어이다.


제1타격력 또는 제1공격력, 선제공격력(first strike capability)은 선제 공격을 통해 적을 완전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제2타격력 또는 제2공격력, 보복공격력(second strike capability)은 자신을 선제 공격한 적에게, 당한 만큼 되돌려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냉전 시기 미·소 양국은 제1공격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지만, 제2공격력은 갖추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공포의 핵균형(상호확실파괴MAD)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어떤 나라가 선제공격을 통해 적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거나(즉 제1타격력을 가지거나), 적의 보복 공격(제2타격력)을 무효화 시킬 수 있다면, 그 나라는 핵 패권국이 될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이러한 핵 패권국이 등장할 경우, (핵 앞에서) 재래식 군사력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 나라가 전 지구적 패권국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어샤이머는 핵 패권국의 등장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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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은 우리가 직접 처벌한다

일본 2016.08.14 18:47 by 소노라

1945년 9월 11일,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평화에 반하는 죄) 혐의자 39명에 대한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 이튿날, 히가시쿠니 내각은 일본이 자체적으로 전범 재판을 실시한다는 각의를 내렸다. 히로히토는 이 결정에 대해 재고를 촉구했는데, 다음날 열린 각의에서도 같은 결정이 내려지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9월 13일, 당시 외무 대신이자 훗날 총리가 되는 시게미츠 마모루가 이러한 의사를 연합군 측에 전달했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스스로 전범 재판을 진행했다.


일본은 1945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B/C급(인도에 반하는 죄와 통상적 전쟁범죄 행위) 전범 8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일본이 스스로 전범을 처벌하기를 원했던 것은, 일본에서 재판을 하고 나면 일사부재리원칙에 따라 연합군 측에서 처벌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재판은 연합군의 포고령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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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강하

일본 2016.08.13 17:09 by 소노라

내각책임제에서 내각의 각료는 국회 의원인 것이 보통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국무대신의 과반을 국회의원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반대로 일단 각료의 과반을 국회 의원 중에서 선임하고 나면, 나머지 국무대신들이 반드시 국회의원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각총리대신(총리, 수상)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서, 반드시 국회의원이어야 하는데 이는 일본국 헌법 제67조에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현행 평화헌법의 이야기이고, 메이지 헌법 체제에서는 총리가 반드시 국회의원일 필요가 없었다. 의원이 아니더라도 덴노(천황, 일왕)의 명령을 받아 총리가 되고, 내각을 조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대명강하라고 한다.


대명강하에 따라 마지막으로 총리가 된 것은 제1차 요시다 내각의 요시다 시게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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